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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형제복지원 폭력 후유증으로 인한 '노동 능력 상실' 첫 인정…국가 배상 판결
1980년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최악의 인권유린 시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하여, 시설 내 폭력과 가혹행위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후유증으로 퇴소 후 노동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피해자에게 국가와 부산시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역사적인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형제복지원 등 집단수용시설 피해생존인에 대한 국가배상소송에서 시설 내 폭력으로 인한 정신장애와 그로 인한 퇴소 이후의 노동력 상실을 인정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단순히 시설 수용 기간에 국한됐던 기존의 배상 인정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것으로, 수많은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의 오랜 염원에 부응하는 사법적 진전으로 평가된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재판장 성지용 부장판사)는 지난 1월 6일,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모임 한종선 대표(50)가 성년후견인으로서 중증 정신장애인인 누나 한신예 씨(53)를 대신해 제기한 일실수입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이를 기각했던 1심 판결을 뒤집고 “국가와 부산시는 공동으로 원고에게 3억 4897만 원 및 이에 대한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형제복지원에서의 폭행, 가혹행위, 정신병동 강제수용 등 공무원들이 관여된 불법행위로 인해 한신예 씨가 퇴소 후 편집조현병과 지적장애를 앓게 되었고, 이로 인해 장기간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으며 일상생활 능력이 저하되어 노동능력을 100% 상실했다고 명확히 판단했다. 일실수입은 해당 사고가 없었을 경우의 예상 수입을 계산한 것으로, 재판부는 원고가 청구한 금액을 전액 인용했다. 원고와 피고 양측 모두 상고를 포기하면서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어 법적 효력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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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심 판결은 기존의 국가배상 판례와는 확연히 다른 접근을 보여준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한신예 씨의 형제복지원 수용 기간을 약 2년 8개월(1984년 10월~1987년 6월)로 인정하고 이에 따른 위자료 2억 5천만 원만 지급하도록 결정한 바 있다. 당시 1심은 퇴소 이후 정신질환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는 “형제복지원 수용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부족하고 증거가 없다”며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었다. 그동안 법원은 형제복지원 등 집단수용시설 피해 생존인의 국가배상소송에서 수용 기간에 대한 피해만 인정하여, 수용 기간 1년당 8천만 원을 기준으로 위자료를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이러한 제한적인 인정은 피해자들이 시설을 나온 후에도 평생을 고통받는 현실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정신의학과 전문의 소견 및 뇌 엠알아이(MRI), 항정신성 약물투여 결과 등 각 증거와 변론 전체 취지를 종합해 볼 때 형제복지원에서 가해진 폭행 및 가혹행위 등으로 인해 원고 한신예의 두부에 물리적 외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고 판단의 근거를 밝혔다. 또한,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여성 사망자의 사망원인 중 2위가 정신분열증이었는데, 이는 서울 소재 다른 수용시설에 비해 5.9배 높은 수치였다”는 통계 자료를 제시하며 시설 내 폭력과 정신질환 발생의 높은 개연성을 강조했다. 일실수입 산정은 한신예 씨가 성년이 된 날(1992년 6월)부터 육체노동을 생계활동으로 하는 사람의 가동연한(취업가능연한)인 만 65세에 이르는 2038년 6월까지의 도시보통인부 일용노임을 기준으로 삼았다. 다만, 똑같이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뒤 장기간 정신질환을 앓다가 숨진 한신예 씨의 아버지 한영태 씨(1947년생, 2022년 작고)에 대한 일실수입 청구는 발병 시기와 원인 등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점과 자료 부재 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신예 씨의 피성년후견인인 동생 한종선 대표는 2012년 국회 앞 1인 노숙 시위를 통해 형제복지원의 진실을 세상에 처음 알린 인물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 운동의 상징적인 존재다. 남매는 각각 11살과 8살이던 1984년 아버지 손에 이끌려 파출소에 맡겨졌다가 형제복지원에 강제 분리 수용되는 비극을 겪었다. 한종선 대표는 소년의집과 서울 마리아갱생원을 거쳐 1992년 사회에 나왔지만, 정신질환이 악화한 누나 한신예 씨는 1985년께 형제정신요양원(형제복지원 산하 정신병동)에 수용되었고, 1987년 6월 퇴소 뒤에도 부산과 칠곡, 완주의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2021년 12월 한종선 씨의 도움을 받아 비로소 퇴원하여 현재는 부산 사하구에서 동생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한종선 대표는 이번 판결에 대해 “누나처럼 시설에서 폭력으로 인해 장애를 얻고도 자기 억울함을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사건을 알리게 됐는데, 그동안 법원은 시설 감금 기간 기준으로만 피해를 인정해주고 누나 같은 사람이 본 피해나 정신적 후유증은 무시돼왔다. 2심에서 이 부분이 바로잡혀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이어 “3기 진실화해위(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우리 누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전수조사를 꼭 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이며 국가 차원의 전수조사를 촉구했다. 여준민 형제복지원사건 대책위 사무국장 또한 “그동안 국가는 부랑인을 보호하기 위해 시설에 수용했다고 했지만, 되려 시설 수용 과정과 그 안에서의 감당할 수 없는 폭력으로 정신장애를 갖게 된 사람이 많다. 이런 피해를 처음으로 인정한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이번 판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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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정신장애 판정(옛 정신장애 2급)을 받은 한신예 씨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법정에 출석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놓인 상황을 명확히 인지하기는 어려운 상태라고 알려졌다. 그녀는 지난 4월 4일 송상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취임식에 동생과 함께 참석하여 국가폭력 피해자석에 앉기도 하는 등, 여전히 끝나지 않은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판결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과 국가의 책임 인정에 있어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과거사 문제 해결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더욱 활발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